반 투안 지음, 한림대 가톨릭교수협의회 옮김, 『지금 이 순간을 사랑하며』, 바오로딸, 2007
반 투안 추기경을 아시나요? 1975년 베트남이 공산화된 후 13년을 감옥 독방에서 지내면서도 희망으로 가득 찬 삶을 살았던 분입니다.
『지금 이 순간을 사랑하며』는 그가 2000년 대희년 사순시기 때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초대로 교황청 고위 성직자들에게 영성수련 피정을 지도하면서 했던 강론을 모은 책이에요. 13년에 걸친 신앙 체험을 통해 어떤 상황에서도 믿음을 가지면 새날이 밝아 온다는 것을 보여주지요.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 ‘하느님은 세상을 이토록 사랑하셨다’ ‘그리스도인들의 씨앗’ ‘네가 내 안에 있으면 나도 네 안에 있겠다’ 등 22개 갈래 안에 큰 주제인 ‘희망’을 담고 있어요.
“정교회 신학자 에프도키모프는 그의 책 『영적 삶의 나이』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현대인은 과거를 기억하거나 미래를 기다리며 살아갑니다. 인간은 지금 이 순간에서 멀리 달아나려고 합니다. 그의 정신은 시간을 죽이는 법을 개발하는 데 활용됩니다. 이런 부류의 인간은 지금 이 순간을 살지 않고 전혀 알지 못하는 공상의 세계 속에서 살아갑니다. 추상적으로 환치된 과거와 미래는 존재하지 않으며 영원성으로 접근할 수도 없습니다. 영원성은 오로지 현재에 맞닿아 있고 온전히 지금 이 순간 현존하는 사람에게 그 영원성을 줍니다. 영원성에 도달할 수 있는 사람과 영원한 현재의 이미지 가운데 살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지금 이 순간 속에 있는 사람입니다.”
- pp. 73-74, 재인용
추기경이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것은 주어진 매순간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주교라는 호칭을 잃어도, 주교좌성당을 빼앗겨도, 사목활동의 즐거움을 짓밟혀도 예수님과 하나가 되어 참된 삶을 발견하고자 했지요. “희망이 없어도 희망하며”(로마 4,18) 살았던 아브라함처럼 순간순간을 하느님의 은총으로 여겼습니다. 사소한 것에 불평했던 일, 작은 것에 소홀히 했던 일, 익숙한 것을 귀찮아했던 일을 돌아보게 하는 모습입니다.
1928년 베트남 중부에서 태어난 추기경은 순교자 선조를 둔 오랜 가톨릭 전통의 집안에서 자랐습니다. 믿음이 깊은 어머니로부터 성경과 베트남 순교자, 사랑과 용서에 관한 가르침을 받았지요. 열두 살에 신학교에 들어가 1953년 사제품을 받은 뒤 성 프란치스코 본당 신부, 병원과 교도소 사목 등을 거쳐 로마 유학을 다녀왔습니다. 1967년 냐짱 교구의 첫 베트남인 주교, 1975년 사이공 대교구 대주교로 임명되지만 공산주의 정권이 그를 인정하지 않았지요.
추기경은 독방에 감금되어 있는 동안 몇몇 간수들이 밀반입해준 나무토막과 철사로 십자가상을 만들어 간직했습니다. 땅바닥에 성경 말씀을 써놓고 관상기도를 드렸습니다. 날마다 포도주 세 방울과 물 한 방울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미사를 거행하기도 했습니다. 달력 종이 뒷면에 희망의 메시지를 써나갔습니다. 석방된 뒤에는 망명자 생활을 하는 가운데 여러 사람을 만나 자신이 겪어온 삶을 나누었습니다.
“저는 꿈꿉니다. 교회가 세상에 열려 있는 거룩한 문이기에 모든 이를 환영하고, 고뇌와 고통으로 가득한 인류를 이해하여 연민으로 화답하며,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 손을 내미는 그런 교회이길 꿈꿉니다.”
- p. 60
추기경의 꿈은 이루어졌을까요. 아마도 진행중이겠지요. 2002년 선종했을지라도 그가 남긴 사랑과 희망의 증거는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그 증거를 확인하는 사람들이 절망을 잠재우고 새로운 희망을 싹틔울 거예요. 지금 삶의 시련에 부딪혀 절망하고 괴로워하는 분들에게 권해드립니다. 피정에 임하는 마음으로 읽어보시길.
- 광고팀 고은경 엘리사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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